피해자가 직접 피해 ‘증명’해야, 법원 판단도 상당히 박해
배상금도 통상 1천만원 수준

직장 내 괴롭힘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법원에서 나오는 판단은 실제 현장의 고통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은행원인 A씨가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가 남겨 놓은 유서에는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중하다는 호소가 담겨있었다. A씨의 아내는 과도한 실적 압박과 직장 내 괴롭힘이 극단적 선택을 가져왔다며 은행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인천지방법원에서 “A씨에게 실적 압박은 과도한 부담을 주는 행위였고, 배려와 존중이 없었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유족의 패소를 선고했다.
그 이유로 “지점장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고 보기 어렵고 관련 증거만으로 가해 행위를 인정하기 어렵다, 은행의 인사책임자가 A씨의 스트레스를 알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근거를 들었다.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가 가해자, 회사를 상대로 “업무상 지위, 관계가 우월한 점을 이용해 과도한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고 민사 상 책임을 진다” 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앞선 예시처럼 피해자가 만족할 만한 손해 배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증명’의 책임을 배상을 요구하는 쪽에서 부담해야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이었다면 증명이 어려운데다, 목격자가 있더라도 계속 직장에 다녀야 하는 입장이기에 증언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전문가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피해 상황을 담은 녹취나 메시지가 증거로 있으면 좋으나, 피해자가 괴롭힘의 상황 속에서 증거를 수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카드사 직원 B씨의 유족들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통상의 관행대로 인사가 이루어지거나 합리성, 필요성이 인정되면 불리한 처우라거나 보호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외항선 기관사로 근무하던 구모씨의 유족도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가해자, 선장, 회사에 일부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기 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고. 이 사건도 유족들이 괴롭힘 상황을 주변인에게 호소했던 메시지 등을 증거로 제출했으나, 1심 재판부는 괴롭힘과 구씨의 극단적 선택 간에 연관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는 다행히 연관성을 인정 받았지만, 인정한 배상액은 유족의 청구액에 20%도 못 미치는 정도였고 소송 비용마저 유족 측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사측이 이 결과에 불복함에 따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양태정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손해 배상을 인정하는 금액이 예전보다는 늘어났다”고 이야기하며 “그러나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배상액이 통상 1천만원에서 많아야 1억원 안팎으로 결정되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 내 괴롭힘은 2019년 7월 16부터 근로기준법 상의 명문을 두어 규제를 하고 있지만, 처벌 기준이 애매모호한데다 사장이 직장 내 괴롭힘을 하더라도 사장에게 신고 해야 하는 모순점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회사와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하더라도 오히려 회사로부터 불리한 처우를 당하거나 괴롭힘이 인정된 후에도 제대로 된 보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총 1천 4백여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갑질 신고 이후 불리한 처우를 당한 사례가 133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괴롭힘 인정 이후에도 보호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249건이나 확인되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의 75%가 조치 의무 위반을 겪고 40%가 보복 조치를 당하는 등 전반적인 괴롭힘에 대한 대책 점검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 이야기를 접한 네티즌들은 “피해자들의 피해를 법원에서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이 사회의 정의는 어디로 간 것이냐”, “가해자들만 떵떵거리는 이 상황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정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