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전기차 ‘EXP 15’ 공개
1930년대 스피드 식스 영감
2026년 출시할 것으로 예상
내연기관의 우렁찬 배기음을 포기하고도,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법을 벤틀리는 알고 있었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2025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를 앞두고 벤틀리가 전격 공개한 ‘EXP 15 콘셉트카’는 브랜드 역사상 첫 순수 전기 GT 모델로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 벤틀리의 미래 전략과 철학을 집약한 결정체다.
감정을 흔드는 전기차, 벤틀리의 해석
벤틀리는 EXP 15를 통해 “럭셔리란 결국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다시 강조했다. 브랜드가 제시한 핵심 키워드는 ‘감정의 회복’이다.
엔진음이 사라진 자리를 정숙하고 몰입감 있는 사운드 환경으로 채우고, 최신 기술에 지친 사용자들을 위해 직관적인 아날로그 조작계를 남겼다.
내부는 고급 오디오룸을 연상케 한다. 디지털 스크린은 최소화됐고, 사용자의 손길에 반응하는 아날로그 다이얼이 중심을 잡는다.
벤틀리는 이 구성을 ‘디지털 디톡스’라고 명명했다. 단순히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감성에 집중한 럭셔리의 재해석이라는 것이다.
소재 역시 파격적이다. 동물 가죽 대신 천연 섬유와 재활용 금속, FSC 인증을 받은 목재를 활용했다. 지속 가능성과 고급스러움의 공존을 시도한 셈이다.
1930년대의 유산, 2025년에 부활
EXP 15는 단순한 미래 지향 콘셉트가 아니다. 그 뿌리는 1930년대의 전설적인 벤틀리, ‘블루 트레인 스피드 식스’에 있다. 실제로 이번 콘셉트카는 당시 모델의 우아한 실루엣과 고전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특히 독특한 3인승 구조가 눈길을 끈다. 조수석은 과감히 없앴고, 좌우 비대칭 도어 구조를 적용했다. 운전석 쪽엔 하나의 도어만, 조수석 방향에는 코치 도어 두 개가 배치돼 탑승자의 동선을 배려했다.
2열 시트는 45도 회전이 가능하다. 벤틀리는 이를 ‘차에서 내릴 때의 품격’을 강조하며, 사진 촬영에 최적화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조수석이 빈 자리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전용 침대를 설치할 수도 있다.
외관 디자인도 벤틀리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준다. ‘올곧은 우아함’이라는 철학을 반영해, 전면부에는 새롭게 디자인된 벤틀리 로고와 아이코닉 그릴이 적용됐다. 여기에 긴 보닛, 볼륨감 있는 측면 펜더, 매끈한 후면 라인도 주목할 만하다.
전동화 전략의 시작점, 실험실이자 선언문
EXP 15는 단순한 디자인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벤틀리는 이 모델을 “움직이는 연구실”이라 표현하며 향후 기술 개발의 플랫폼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신형 전기차 전용 플랫폼 위에 듀얼 모터 기반의 고성능 파워트레인을 얹었으며, 브랜드 특유의 부드러운 가속감과 장거리 주행 성능을 동시에 확보했다. 다만 배터리 성능과 열관리 시스템 등 구체적인 기술 제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벤틀리는 2030년까지 전 라인업을 순수 전기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EXP 15는 그 첫 걸음이자, 벤틀리가 전기차 시대에 어떤 모습으로 럭셔리를 해석할지 보여주는 선언문 같은 역할을 한다.
벤틀리모터스의 아드리안 홀마크 최고경영자(CEO)는 “이 차는 단지 콘셉트카가 아니라 벤틀리의 미래를 담은 감성적 언어”라며 “우리에겐 자동차가 기술이 아닌 감정의 매개체여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EXP 15는 양산 계획이 없는 콘셉트카로, 2026년 공개 예정인 럭셔리 전기 SUV에 디자인과 기술적 방향성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양산 여부는 미정이지만, 시장의 반응과 기술 개발 속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